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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쓰는 시사

대한민국 헌정사 살펴보기 Part.2 1차 개헌-4차 개헌

by 연짱。 2016. 10. 29.




이번 포스팅에는 헌정사 파트2로 1차개헌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부가 제대로 수립되었기 때문에 보다 개정 이유 및 표결 내용 등 구체적인 자료들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공부하기가 쉬운편이다. 다만 총 9차에 따른 개헌을 하였기 때문에 내용들이 참 많지만 각 개헌때마다 주요 내용들이 잡히기 때문에 그 특징들만 잘 알면 큰 무리가 없다.


개헌이라는 것은 대체로 대통령의 임기와 선출방법에 관련이 있다. 간선제일 경우 야당이 다수일 때 개헌을 하여 직선제로 바꾸려고 하거나 또는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회를 해산시켜버리는 등 한국에서는 주로 독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지금을 6공화국이라고 부르는데 이 공화국의 뜻은 헌법이 크게 바뀜에 따라 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붙게 된다.










1. 1차 개헌


공포일: 1952년 7월 7일


1차 개헌은 한반도전쟁이 발생하기전 제 2대 총선에서 무소속이 60%넘게 득표를 하여 여소야대가 발생하였다. 그러던 중 전쟁이 시작되고 정부는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정부는 당시 헌법이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였기 때문에 재선이 불가할 것으로 보여 국회에 직선제 개헌안을 제출하였지만 역시나 야당이 다수이다보니 통과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승만은 부산 정치파동이라는 사건을 일으킨다. 야당의원을 협박 감금하고 공산당과 엮어 구속 시키고, 계엄령을 실시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당시 임시 국회 건물 밖에서 군경들이 포위를 한 상태에서 직선제를 통과 시킨다. 때는 1952년 7월 4일로 표결방법은 기립표결로 재적 166명 중 163명이 가결을 하며 3명이 기권을 한다. 당시 부통령인 이었던 인촌 김성수는 "민주주의의 유린"이라며 사퇴를 하게 된다.


1차 개헌을 발췌개헌이라고 말한다. 장택상을 중심으로한 신라회가 정부의 직선제, 국회의 내각책임제 안을 발췌하여 혼합하여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개정에 따른 절차가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법의 위반이라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1차 개헌의 주요 내용은 양원제 국회(민의원, 참의원), 대통령/부통령 직선제, 국회의 국무원 불신임제도,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한 대통령의 임명 등 이다. 그러나 1954년에 실시된 3대 총선에서는 양원제가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아 실질상 단원제가 되었다.








2. 2차 개헌


공포일: 1954년 11월 29일


2차 개헌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4사5입) 개헌이다. 수학에서 4는 버리고 5는 반올림을 하는 것처럼 표의 값을 그렇게 매겼다는 것이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를 하자 제헌헌법의 초대에 한하여 중임까지 허용한다라는 내용을 빼버리려고 한다. 이것은 장기독재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런 골자로 개헌안을 제출하였고 국회는 투표에 들어갔다. 재적 203명에 찬성 135명, 부결 60명, 기권 8명이다. 당시 헌법개정시 재석의 2/3의 찬성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당시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부결을 시켰다. 


근데 3분의 2라면 135.333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소수점으로 매길수가 없다. 그러므로 136명이 되어야 하지만, 어떻게든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학논리를 사용함으로서 135를 기준으로 잡아 다시 통과시킴으로써 중임이 철폐가 되었다.


이 외에 주권의 제약 및 영토의 변경을 가져오는 중대사항에 대해서는 국민투표실시, 국무총리제 및 국무위원의 연대책임제를 폐지, 대통령궐위시에 부통령이 계승, 경제조항을 자유경제체제로 수정하는 등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 때에도 여전히 양원제는 실시가 되지 않았다.





이철승 위원이 최순주 국회 부의장의 멱살을 잡는 장면

이철승 의원은 전주에서 7선을 한 의원으로 일명 '사쿠라'라고 불린다. 

전남의 김대중, 충청의 김종필, 영남의 김영삼처럼 전북을 대표하는 야당의 정치인이다.





3. 3차 개헌


공포일: 1960년 6월 15일


1956년 제 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당선이 된다. 당시 상황을 조금만 살펴보면, 민주당의 신익희와 진보당의 조봉암이 비밀회동을 가진 후 신익희를 단일후보로 내세우려고 하였으나 선거유세 중 뇌일혈로 사망함에 따라 조봉암이 후보로 나왔다. 결국 좌파경력으로 말이 많아지고 야권의 분열로 이승만이 7:3으로 승리를 손쉽게 승리를 하게 된다. 신익희가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글쎄... 근데 여기서 웃긴 것은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이 러닝메이트였는데 자유당의 이기붕이 민주당 장면에게 아쉽게 패배를 하게 된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이승만의 독재가 더욱 공고화가 된다. 그리고 1960년 4대 선거에서 또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조직적으로 투·개표 조작을 하게 되고 이승만과 이기붕이 당선되었다고 공포한다. 하지만 이 일이 밝혀짐에 따라 전국적으로 시위가 나타나게 되고 특히 마산에서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이 최루탄이 박힌채 바다에서 발견되어 더욱 격화되었다.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을 사퇴, 이기붕은 부통령을 사퇴함으로써 무마하려고 하였지만 대학교수들의 가두시위 및 불이 꺼지지 않아 결국 하야를 함으로써 국회는 개헌을 통한 사퇴수습을 하기로 하였으며 허정을 수반으로 한 과도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4·19 혁명이다.





마산 앞바다에서 체루탄이 박힌 채 발견된 故 김주열 열사




이승만 정권 퇴진을 위한 가두시위




3차 개헌에서는 의원내각제를 실시함으로써 대통령의 지위를 의례·형식적 지위에 한정을 시켰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하였다. 또한 경찰의 중립화 및 사법권의 민주화, 지방자치의 민주화를 골자로 하는 등의 개정을 하였다. 


이로 인해 같은 해에 실시된 5대 총선에서는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원제 국회가 만들어졌다. 당시 자유당 소속의 의원들은 이 간판을 달고 총선에서 당선될 수 없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그래서 자유당 당선자는 얼마 안되고 무소속이 많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원내 1당은 민주당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자유당이 새누리당, 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인데 이 때가 가장 민주당이 압승을 한 때였다.


또한 이 때 역시 대통령의 하야로 인한 공석이 발생하자 서둘러 대통령 선거에 돌입하였다. 8월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투표가 실시되었는데 손쉽게 윤보선이 당선되고 장면이 총리로 뽑혔다. 지금까지 1공화국이 끝나고 2공화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와이로 떠나는 이승만을 배웅하러 온 허정







4. 4차 개헌


공포일: 1960년 11월 29일


4차 개헌은 이전 정권의 부패과 비리 등 부정과 불법의 처벌을 하기 위한 개헌이었다. 이승만이 하야발표를 하였던 4월 26일까지 특정지위에서 반민주적인 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 제한을 제정하였다. 공민권은 국민이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업무에 참여하는 권리이다. 또한 그 자리를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자에 대한 행정상 또는 형사상의 처리를 하기 위한 일종의 특별법의 개헌이었다. 다만, 이 특별법들이 소급 입법이 되었기 때문에 위헌논란이 있었다. 또한 이를 위해 형사사건 처리를 위한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설치하였다. 


윤보선 정권은 비정상화된 상황을 정상화로 돌리려는 노력을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러지를 못 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세력을 제대로 사법처리 하지 못 하였으며, 특히 장면과 윤보선간의 대립으로 인해 정국은 제대로 돌아가질 못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후 당시 박정희 소장의 쿠테타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 정권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였다는 방증이다. 


아쉽게도 민주당이 이 때 잘 하였더라면 산업은 덜 성장하였더라도 보다 지난 몇 십년의 군사독재는 없었을텐데..근데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는 전세계적으로 다 그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신생 독립국가들 중심으로 군부의 독재가 이어져왔다. 대표적인게 스페인의 프랑코이다. 





윤보선(좌)과 장면(우)






한번에 9차 개헌까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여기서 나뉘게 되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5차부터 9차까지 살피도록 하겠다. 신기한게 MBC에서 5공화국 드라마만 만든 줄 알았는데 1공화국부터 쭉 만들어 왔었다. 궁금하다...어떤 내용들인지



자료출처: 위키백과, 국회,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진출처: 위키백과